혜랑법사를 모시며 불법을 배우고 있던 거칠부는 어느날 혜량법사가 자신을 따로 부르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사실대로 너가 어디에서 왔는지 말하거라"

난데없는 스승의 물음에 한참을 고민하던 거칠부는 자신의 숨겨왔던 자신의 비밀을 밝혔습니다.

"저는 신라에서 왔으며 법사님께 불법을 배우고자 이리 와있게 되었습니다."

"허허.. 나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신라인이면서 적국인 고구려까지 왔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법사님.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국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놀랄만한 비밀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한 거칠부의 대답은 단호하였기에 혜량법사는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하였습니다.

"가거라. 아무리 불법이 중요한든 산 사람 목숨만 하겠느냐?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절이니 만큼 네 행동을 의심할 수 있는 자 역시 많을 것이니라.

너와 나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불법은 천천히 배워도 되느니라"

스승으로부터 돌아가라는 언질을 받은 거칠부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왕실의 후예로 권력자로써의 미래보다는 업과 윤회, 그리고 불법의 뜻을 가지고 머리를 깎은 채 구도자의 길을 결심했던 자신의 포부가 이리 꺾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해졌습니다.

"너는 속세를 떠나 불법에 귀의할만한 위인이 아니다. 신라로 돌아간다면 너는 큰 장군이 될 수 있을터이다. 언젠가 고구려와 신라가 전쟁이 난다면 못난 스승을 해치지는 말아다오. 그리고 그 때도 네가 불법에 뜻이 있다면 내 기꺼이 제자로 받아주마"

스승의 말에 무언가 뜻이 있음을 알게된 거칠부는 혜량법사에게 큰 절을 하고 신라로 돌아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거칠부는 관직에 오르게 되었고, 진흥왕 12년,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공격했습니다.

이 출전에서 거칠부는 장군으로써 고구려군에 맞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피난을 가는 한 무리의 고구려인들을 발견하고 잡아들이는 신라군의 수장 거칠부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는 냉큼 말에서 내려 한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법사님을 다시 뵙고나니 옛말씀이 한치의 그릇됨도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터이니 염려마시기 바랍니다."


고구려인틈에서 혜랑법사를 발견한 거칠부는 단숨에 달려나가 옛 스승께 인사를 올리며 약속을 잊지 않았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스승님 이제라도 부디 저를 다시 제자로 받아주시어 불법을 설파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신라로 데려가 주시오. 고구려에서는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 나 말고도 많은 고승이 많으니, 불법이 아직 미약한 신라에서 법을 전하고 싶구려"


당시만 해도 불교가 많이 퍼지지 않았던 신라에 손수 혜랑법사가 온다는 말에 거칠부는 곧바로 진흥왕께 고했고, 진흥왕은 크게 기뻐 혜랑법사에게 국통을 제수하고 불교를 널리 펼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신라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신라의 고승들이 많이 탄생할 수 있었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