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의 원조는 궁예의 관심법이 아닐까?
최근 친구와 함께 태조왕건을 1화부터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심심하다면서 200부작인 태조왕건을 1화부터 틀어버린 친구 덕분에 강제시청중이죠..)
당연히 지금의 사극에 비하면 그 퀄리티가 떨어지긴 하지만 오래전 드라마인 점을 감안하고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됩니다.
아직 후삼국이 전쟁중인 초반부분이기에, 왕건보다는 궁예와 견훤, 이 두 군주의 행보를 다루는 부분을 보고 있는데요.
뜬금없는 태조왕건 정주행 덕분인지, 지금까지도 짤과 유머로 회자되는 궁예의 관심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어린 시절엔 단순히 악역 궁예의 말도 안되는 행동을 조롱하는 유행어정도로 여기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관심법을 바라보게 됩니다.
궁예가 미륵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신라의 왕자라는 태생임에도, 버림을 받고 평범한 백성과 승려로써의 삶을 살아온 궁예.
그런 그에게 당시 혼란했던 천년제국 신라 말기의 현실은 너무나 비참한 사회로 다가왔을 겁니다.
나라를 팽개친 채 자신들의 권력과 재물만 탐하는 왕실과 기득권층에게 핍박을 받던 백성들의 모습을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자신과 동일시 여겼기에 고려라는 새로운 나라, 그리고 (현재 보고 있는 부분인) 아지태라는 학자가 주장한 대동방국에 대한 로망이 (병적으로 보일만큼) 컸을 거라고 보입니다.
또한, 승려출신이라는 선망의 대상이라는 점과 현인류를 구원해주실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에 대한 동경, 그리고 그 동경을 실천하며 곧 새로운 백성을 위한 세상을 본인이 직접 이루고자 했다는 점에서 왕건마저도 그에게 빠질 수 밖에 없는 올바른 리더쉽이 발휘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이미 신라왕실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불교라는 민초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했던 승려 궁예가 기존의 기득권과는 달리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부처님이 구원을 하기 위해 내려왔다고 믿고 따르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관심법은 궁예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적 수단
아직 제가 보고 있는 부분에서는 궁예가 관심법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부분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마음대로 관심법이라는 능력을 사용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궁예의 모습은 아직 기억합니다.
결과적으론, 자신의 무기인 관심법으로 인해 왕건에게 당하는 꼴이 되었긴 하지만, 관심법이야 말로 모든 지도자들이 부러워할만한 최고의 정치적 수단이었습니다.
역사상 세계의 수많은 권력자들은 각종 이유로 언제나 희생자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때론 도둑놈이나 사기꾼으로, 때론 역적으로 그들을 축출하거나 힘을 축소시키려고 하였는데요.
이 때, '정당성', '명분'이라는 것을 세우기 위하여 적들의 약점을 파헤치고 함정에 빠트리는 등 각종 계략 술수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아무리 절대권력자라 할지라도 백성들과 신료들, 그리고 역사에 남겨질 자신의 이름과 평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미륵부처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는 궁예만은 유일하게 관심법이라는 '초능력'을 빌미로 탐탁치 않는 자들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었는데요.
궁예가 귀찮게 희생자들을 몰아낼 계략을 사용할 필요 그 자체가 없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궁예는 그간 민초들이 겪어왔었던 기존의 왕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앞선 역사에서 수많은 성군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백성을 위하는 '왕', '황제' 라는 사람이었을 뿐 궁예처럼 신으로 추앙받지는 못했었는데요.
백성들로부터 충성이 아닌 숭배의 대상이었기에, 궁예는 관심법이라는 말도 안되는 능력을 이용할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궁예가 관심법을 남발하지 않고,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고려라는 국가의 태조로써 인정을 받아 성군이 되었다면 관심법은 지금처럼 놀림거리가 아닌 마치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었고,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처럼 하나의 설화로 내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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