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주는 신라시대에 날이군이라고 불리우던 곳입니다.

그 시대에 하루는 군장인 태을이 날이군의 세력가였던 파로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몇일 후 왕께서 친히 이 곳을 방문하시는데, 우리 고을에서 마땅히 대접할 것이 없어 고민입니다. 파로님의 따님을 왕께 진상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군장은 조심스레 입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던 말을 빙빙 돌려서 이야기를 하였고,

하나뿐인 외동딸이자 온 마을에 그 미색과 성품이 널리 알려진 금덩이보다 귀한 딸을 마치 물건 취급하는 듯한 태을의 이야기에 화가 난 파로는 성을 내며, 그가 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자리를 박차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부터 파로는 편하게 잠을 들지 못했습니다.

소중한 자신의 딸으 왕에게 진상하라는 말에 기가 차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거니와 군장이 자신을 얕잡아본 것이라 생각하니 불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거니와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반대로 일언지하에 단호한 거절을 한 자신의 행동 때문에 혹여나 해코지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연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보고 파로의 부인과 열여섯난 딸 벽화는 최근들어 이상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의아하게 여겼고, 결국 파로는 자신의 고민을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팔짝뛰는 부인과는 달리 딸 벽화는 한참을 고심하던 끝에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하여 스스로 왕을 위한 진상품이 되기로 결심하였고, 이에 부모는 그런 딸의 속내를 헤아리고는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몇일이 지나고 신라의 21대 왕인 소지왕이 마을을 방문하였고, 곧 술과 각종 음식들을 비롯하여 성대한 잔치가 늦게까지 열리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한참 달아오를 때쯤, 군장 태을은 소지왕 앞에 큰 함을 진상품으로 들였고,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열여섯의 아름다운 벽화가 홍조 띈 얼굴로 수줍은 듯 들어있었습니다.

그 순간 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역정을 내고는 "지금 당장 대궐로 돌아갈 것이다" 라며 궁궐로 돌아가버렸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려던 벽화와 그의 부모, 그리고 진상을 준비한 군장까지 어리둥절한 채 혹여 우환이라고 생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슴을 졸이던 날들이 하루하루 지나 10여일이 흘러간 어느날 새벽

조용하지만 분명히 문밖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고, 이 소리에 잠에서 깬 파로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문앞에는 귀품있어보이는 한 사내와 그 주인이라도 되는 냥 얼굴을 가린 한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옷차림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파로와 그의 가족은 얼떨결에 그들을 집안으로 들였고, 이 때 딸 벽화가 우연히 방문객의 얼굴을 살짝 보고는 대뜸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왕께서 어쩐 일로 누추한 곳에 방문하셨나이까?"

그렇습니다.

새벽의 방문자는 소지왕과 그의 심복이었고, 벽화를 보기 위해 암행을 한 것이죠.

심복이 왕께 전하길 "소신은 궁궐로 돌아가 오늘 하루 국사를 물리신다 전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또 파로에게 전하길 "폐하께서 친히 이곳에 온 연유를 알고 있을 테니, 잘 모시도록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잠시 후 정성스럽게 꽃단장을 한 벽화는 또 한번 왕의 앞으로 들여졌고 조심스럽게 소지왕은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너를 보살피지 않고 궐로 돌아가 많이 서운했을테지? 

너의 아름다움에 한눈에 반해 바로 뛰어가 안고 싶었으나 주위 눈이 있어 자중하고 돌아갔느니라. 계속하여 궐에서도 네 얼굴이 떠오르기에 이제부터라도 내 곁에 두기 위해 이리 찾아왔으니 지난 일은 잊어버리도록 하여라."

왕의 정성스러운 사랑고백에 감동한 벽화는 눈시울은 붉혔고 왕은 그런 그녀를 마치 귀중한 보물을 대하 듯 조심스럽고 기품있게 안아주었습니다.

이읔고 불이 꺼진 채 다음 날 정오까지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 날 이후 벽화는 소지왕의 후궁이 되어 궐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 일은 신라의 대표적인 사랑이야기로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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