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적응의 동물


벌써 내일모레면 32살이라는 나이가 되는군요. 

군대다녀와서 매일 밤새 술마시고 즐기며 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덧 30대란 나이에도 익숙해져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요. 제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들  "왜 그 나이에 편의점 알바를 하느냐?" 고 묻더군요.

심지어, 편의점 사장님까지도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편의점 아르바이트 역시 다른 알바처럼 10대후반, 20대초반에 잠깐 용돈이나 벌려고 하는 하찮은 직업, 아니 직업으로 봐주지도 않는 시선이 많은 듯 합니다.

뭐 다른 글들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사우디에서 돌아와 다시 중동지역으로 나가는 문제로 아버지와 의견충돌이 있어 친구 자취방으로 짐싸들로 내려와 생활 중입니다.

친구녀석이 밤엔 혼자 있고 싶다고 하길래;; 그냥 카드값이나 벌 겸해서 다니게 된 편의점 아르바이트.

평생 알바라곤 몇번 해보지도 않은 제가 늦은 나이에 편돌이 생활을 하며 사우디에서의 경험이 이렇게 저를 변화시켰구나. 라고 다시 한번 느끼곤 합니다.


제가 자취하고 있는 지역은 시흥시 정왕동으로 외노자, 조선족이 점령하였다는 안산 원곡동 다음으로 떠오르는 지역입니다. 인터넷에서도 이미 유명한 곳이죠.

그리고 현재 제가 야간에 일하는 편의점 위치는 정왕동에서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은 지역에 속해있는 곳이구요.

20살때 정왕역에 있는 한국산업기술대에 입학하면서부터 알게 된 동네, 그 때는 중국인과 조선족, 그리고 거무튀튀한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 무서워 보였습니다. (실제로 무서운 짓도 많이 해왔고, 또 지금도 일어난다고 하네요.)

몇년 전에도 아버지친구분 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함께 일하던 외국인들에게 거리를 두었던 것이 사실이구요.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오고 그곳에서 만난 삼국인 직원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심지어 네팔여행을 가서 다시 만나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소위 삼국인이라 부르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대하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사람들보다 삼국인들이 대하기가 편하다고 할 정도로 말이죠.

이렇게 된 건 아마도 사우디에서 제 밑의 포지션에서 몇달을 함께 일하며 친하게 지냈던 네팔인들 덕분일 겁니다.

(한국귀국 하루전 Bipin, Binod, Manit와 함께 숙소에서)

갑자기 글을 쓰다보니 문득 제 밑에서 모자란 저를 잘 따라오고 영어실력까지 일취월장하게 도와준 Binod 와 Bipin, (Binod는 11월 네팔여행에서도 만나서 함께 놀았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후임으로 온 Roshan 과 Bir, 

일하는 포지션은 달랐지만 친구처럼 지내며 함께 몰래 즐겼던 Manit 와 스리랑카, 인도, 에티오피아, 네팔 등에서 온 수많은 직원들이 생각납니다.

물론 어린 저를 얉보고 무시하고, 뒤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지금도 저를 Sir, Boss 라고 부르며 페이스북을 통해 가끔 연락하는 그때의 친구들이 너무나 고맙고 꼭 다들 다시 봤으면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소위 고위험군지역에서 야간에 일을 하다보면 조선족, 중국인 그리고 어느나라인지도 모를 수많은 외국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아니 60%이상이 외국인들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과거의 사람계층을 나누고, 한국에서만 살던 저라면 분명히 거리를 두고 무서워했겠지만(어쩌면 이지역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체를 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냥 어느 동네처럼 무덤덤하게 길을 걷고, 그들을 상대하고, 함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이유를 적어보면 이미 저는 그들에게 적응이 되었기에, 어눌한 한국말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그들이 한국인들보다 훨씬 고운 심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곱지 않은 시선과 멸시, 한국직원과 사장님의 폭언과 폭행 속에서도 열심히 돈을 벌어 고국에 돌아가 당당히 성공한 삶을 누리겠다는 마인드를 가진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네팔친구들에게 또 한번 고마움을 느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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