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인종차별의 장벽을 깨고 사회정의의 메세지를 전파를 위하여 자신의 코미디적 기질을 활용하던 딕 그레고리(Dick Gregory)가 올해 84세의 나이로 사망을 하였다는 소식입니다.

그는 1960년대 당시 최초의 흑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중의 하나로 백인관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때,

세인트루이스에서의 가난한 어린시절을 포함하여 능숙하게 당시 만연해있던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 풍자를 하며 인권운동을 하였습니다.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나 여기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가난한 최악의 이웃과 함께 살며, 최악의 학교에 다니며, 버스에서는 맨 뒤에만 타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고 이에 대한 유머를 하는 것 만으로 하는 것만으로 나는 주 5000달러씩 받고 있네요"

라는 그레고리의 날카로운 논평은 곧 흑인 사회의 평등과 통합 그리고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뉴저지의 민주당 상원의원인 코리부커는 '딕 그레고리는 움츠리지 않는 정직과 용기, 강인함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사랑 그리고 영감을 주었다' 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인권 운동가로 알려진 제시 젝슨 목사는 '그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웃어야하고, 또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전해주었습니다.' 라며 읊조렸습니다.


그레고리는 60년대 후반 존 레논과 그의 친구들의 반전 애국가에도 참여하였으며, 레논과 요코오노를 위한 '침대에서'를 준비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생전 기도와 건강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대해서도 설교를 하였는데요.

과체중 흡연자와 음주자들에게 원시시대음식다이어트를 권하기도 하였죠. 또한 80년대 후반 인기있었던 슬림안전 바하마 다이어트 제품을 배포한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1968년 비록 당선이 되지 않았지만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를 하였던 시민운동가 딕 그레고리의 인종차별에 대한 풍자적인 코미디는 빌 코스비, 리차드 프라이어 등의 흑인 코미디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스트 셀러로도 등재된 그의 자서전 검둥이(Nigger)의 내용처럼,

'웃긴 유색인이 아니라 유색의 웃긴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라는 그의 견고한 원칙은 힘든 시기를 험난하게 앞장서서 헤쳐나갈 수 있었던 그의 원천은 세계의 시민운동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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