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구정이 지날즈음 그동안 외삼촌네서 모시고 계시던 외할머니를 저희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저와 똑같은 호랑이띠로 올해 92세를 맞이하신 할머니를 처음 모시고 올 때만 해도,

가족 모두 곧 돌아가실 거라고 짐작을 했었고 요양원으로 보내기 보다는 마지막 가는 날까지 딸이 보살피면서 마음이라도 편하게 지내다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몇년을 매일 방안에서 하루종일 혼자 계셨으니, 음식도 제대로 못챙겨드시고 하루하루 죽어가는 산송장같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해도 무방할만큼 참 연약하고 불쌍하고 인상이 쓰이는 모습이었죠.

그런 외할머니가 몇개월을 저희집에서 지내시면서 오히려 점점 좋아지고 계십니다.

치매 자체가 되게 약하게 오셔서인지는 몰라도, 기억이 잘 나지않거나 헷갈리는 것을 제외하면 오히려 젊어지셨다고 할 정도로 불과 몇달 사이에 그 모습이 싹 바뀌었는데요.

이제는 말도 잘하시고, 의사표현도 확실히 하며, 

음식도 더 가지고 오라고 할 만큼 잘 드시고 계십니다.

물론 화장실도 스스로 가시고, 더 이상 고향에 간다며 집밖으로 나가려하거나, 밤에 무섭다며 벌벌떨지도 않으시네요.


거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에게 안방에서 생활하시는 아버지는 세들어사는 노총각으로 기억되신 듯 하고

어머니는 때로는 딸, 때로는 언니 라고 부르시며

손자인 저는 아들이나 동생 혹은 건넛방 노총각의 아들이라고 기억되신 듯 합니다.

다시 해외나가는 일이 계속 딜레이되고 있어 집에서 쉬는 날이 많아서 그런지, 때때로 저보고 불쌍하고 안쓰럽다며 본인의 돈과 재산을 떼어주신다기도 하고

(뭐 실제로는 다 진작에 없어졌습니다만 -_-^)

배고프면 우리집와서 밥먹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비록 기억은 오락가락하지만 저를 챙겨주려는 마음이 참 감사합니다.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올해도 벌써 반이넘게 지나가면서 점점 건강해지는 할머니를 보자니, 어쩌면 증손자까지 보고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네요.


늘 하루종일 옆에 붙어 있는 딸과 외손자, 그리고 저녁마다 챙겨주는 사위,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는 아들

그리고, 고생하시는 요양보호사님과

간혹 방문하시는 연뿌리봉사단, 법화회 서울지부 회원분들과 반갑고 즐겁게 지내며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부처님의 큰 보살핌이 아닐까? 라며 머릿속에 상상해봅니다.

얼마전부터는 빨래를 하신다며, 널어논 빨랫대에서 말르지도 않은 옷들을 주섬주섬 개어놓거나 정리를 한다며 물티슈를 죄다 뜯어 차곡차곡 정리를 하는 등 웃음을 선사해주는 할머니를 보면서,

가족을 힘들게 하는 정도의 치매가 아니라서 감사하고, 우리가족이 더 웃을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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