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구정이 지나고부터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를 저희 집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봉사단과 종교단체를 이끄시며 워낙 바쁘신 어머니의 활동에 다소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편하게 계시기도 하고, 할머니 덕분에 집안 화목도 더 좋아졌다는 장점도 있는데요.

가끔씩 외할머니를 돌보러 오시는 요양보호사 분과 사회복지사 분들이 와보시고는 '와 정말 잘하셨다.' 라고 칭찬을 해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치매노인을 거실에 모셔서 식구들이 오고가며 자주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올해 93세가 되신 할머니는 제가 군대 휴가 나올 때인 23즈음 까지도 멀쩡하셨으니, 치매가 온지 몇년 안되는데요.

친아들인 외삼촌 댁에서 어릴적부터 모시며 살았었기에 올 봄까지도 계속 외삼촌네에 계셨습니다만, 오히려 최근 저희집으로 모시게 되면서 너무 건강해지고, 치매증상도 완화되었는데요.

제가 어릴적부터 외숙모와 할머니는 서로 사이가 안좋았었습니다.

활동적이고 늘 자신이 대장노릇을 해오며 살아온 외할머니는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반대로 외숙모 역시 자신에게 호되게 하는 시댁식구들을 좋아하지 못했을 겁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며느리로써의 역할이 있는데, 그 벌을 어찌받으려고 그러는지..라는 주위분들이 말할 정도니 뭐.... 나중에 지켜보면 알겠죠.

간혹 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도, 저와 어머니는 "곧 할머니도 돌아가시겠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노인들 특유의 냄새도 나고, 마치 산송장처럼 뼈만앙상하게 남아 하루종일 방안에서 혼자 계셨거든요.

끽해야 외삼촌이 출근전, 퇴근 후 잠깐 와서 말동무 해드리는게 전부였을 뿐, 누구하나 들여다보지도 않고 끼니만 차려주고는 제대로 먹는지 보지도 않았으니 말이죠.

(뭐.. 외숙모와 사촌들을 탓하진 않습니다. 어차피 그 죄를 똑같이 돌려받을 걸 알기 때문에요)


글을 적다보니, 주제와는 조금 다르게 새어버렸네요.

요는 치매노인이 몇년동안 끼니 때 잠깐, 친아들 출퇴근후 잠깐의 시간 빼고는 사람을 대하지 못하고 방안에 혼자 있었다는 겁니다.

심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마치 가축처럼 그냥 때되면 밥먹고, 볼일 보는 것을 제외하면, 방안에서 사람구경도 하지 못한 채 켜져있는 TV만 보고 계셨다는 거죠.

(늘 말씀드리지만, 저희어머니께서 살림까지 잘하시면, 저같은 놈의 엄마가 되실 분이 아니기에, 지저분한건 그냥 그러려니 하시길)

이렇게 사실상 죽음을 받아들이던 외할머니께서 저희집에 오시게 되면서부터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넓게 보이는 거실에 지내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 이외에도 봉사단체나 불교모임, 동네 이웃등 발이 넓으신 어머니 덕택에 많은 분들이 저희집에 드나들 때마다 할머니께 인사도 드리고 말벗도 되어드리고, 간식도 주시는 등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게 된 것을 보면 역시 사람은 어울리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3월초 서울 본가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밤마다 옛 고향을 찾아가야 된다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하거나, 살림을 다 헤쳐놓는 등 치매끼 때문에 꼭 가족 한명이 붙어있었어야만 했는데요.

오히려 지금은 너무 좋아지셔서, 의사표현도 잘하시고, 노래도 부르고, 농담까지 하며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너무 회복된 상태가 되어,

저번에는 대변을 지린 것을 창피해하셨는지, 새벽에 혼자 화장실에 가서 기저귀랑 속옷을 혼자 빨래를 해서 널어놓으시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거 누가 이런거지? 했었죠;;;;)


처음에 모실 때만 해도 "돌아가시기 전에 딸네 집에서 잠깐이나마 편하게 있다 보내자." 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저러다 나 결혼할 때까지 살아계시는 거 아냐? 너무 오래 사시면 부담되는데~" 라며 어머니와 농담을 할 정도로 건강해진 모습을 보며 정말 100세까지도 사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니 말이죠.

그렇다고 사실 저희 집이 치매노인을 위한 어떤 교육을 받았다던가, 특별하게 할머니를 위해 해드리는 건 없습니다.

어머니는 같이 거실에서 주무시면서 장난치고, 밥차려드리는 등 다른 며느리, 딸들과 별 다를 것도 없구요.

아버지 역시 저녁에 들어오시면서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나눠드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방에서 컴퓨터하기에 바쁘기에, 화장실에 드나들거나 외출할 때 재밌는 흉내나 좀 내고 할머니 손잡아드리면서 잠깐 웃어주는 것 밖에 하는 게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담당의나 요양보호사분들이 놀랄만큼 호전된 치매노인의 상태를 보면, 예측일 뿐이지만, 저희 가족처럼 오픈된 장소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한 가족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평범하게 대해주는 것이 치매에 걸린 분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만약 집에서 연세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계시다면 너무 배려를 해드린다며 혼자 두시지 마시고 자주 들락날락 하며 장난도 치고, 많이 웃으실 수 있게 해드리면서, 노인들 스스로 자신이 짐이라고 생각되지 않게 대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해드리고 싶네요.

참.. 그러고보니 가족사진을 찍어본 기억이 거의 없네요.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 언제 한번 가족사진이라도 찍어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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