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집에는 몇년 째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가 계십니다.
외삼촌이 모시다가 이번 구정부터는 저희 집에서 모시기로 했죠.
저와 같은 호랑이띠이시니까 올해 92세 나신 외할머니
제가 어릴 적 보아온 할머니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참 대단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돈도 있을 만큼 있겠다, 본인 성격도 있겠다 싶으셨는지 하고싶은 것 다 하고 사셨고, 늘 언제어디서나 대장으로 살아오셨는데요.
그러다보니 집안살림보다는 밖으로 나가게 되고, 어릴 적부터 집안일은 큰딸인 어머니께서 거의 다 했다고 들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을 하시며 정말 젊잖은 양반이셨던 외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할머니를 휘어잡지 못하셨다고 하네요.
지금 92세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어째 이 할머니는 갈수록 건강해지는 듯 합니다.
외삼촌도 간혹 들리면서
"어머니가 누나네 와서 훨씬 좋아졌네" 라고 하실 정도니 말이죠.
가만 보면, 이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제가 진심으로 할머니를 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외숙모나 조카들을 탓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친부모처럼은 대하지는 않았던 그간은,
구정즈음 그리고 그 전에 본 외할머니의 다 죽어가는 모습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구.. 저 노인네 그렇게 혼자 잘나더니, 곧 돌아가시겠는데..."
방구석에 쭈구려서 정신이 오락가락한 채 해골만 남고, 거무튀튀한 피부.....
저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까지 모두가 똑같이 느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현재...
손아구힘이 어머니보다도 쎄시고, 장난을 치고, 피부가 뽀얗고 도저히 치매걸린 노인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좋아지신 모습을 보다보면 참...인생사라는 게 뭔지...
어느집이나 있는 가족, 친척들간의 불화도 있었고 아직도 마음의 한으로 남는 기억이 생생하지만 기억도 못하고 딸, 손자 이름도 제대로 기억못하는 양반앞에서 화를 내는 것도 아무 부질없는 듯 합니다.
아마 길어야 1~2년후. 가깝게 다가온 그날까지 편안하게 농담하고 웃다가 가시라는 아버지의 말처럼 지난 일이야 어찌되었든 끝마무리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 번호6개만 알려주세요.
(실제 제가 장난치면서 매일 기억시키는 중입니다 ㅎㅎ)